경희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 박사 김상국
경희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 박사 김상국

나이가 든다는 것은 좀 이중적인 기분이 든다. 좋은 점과 나쁜 점 등 다양한 많은 것들이 그 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다산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고 한다.

“나이들어 귀가 안들리는 것은 작은 것은 듣지 말고, 큰 것만 들어라는 것이고, 나이들어 눈이 잘 안보이는 것은, 작은 것은 보지 말고, 큰 것만을 보라는 뜻이다.“ 참 좋으신 말씀이다. 그러나 현대 의술이 좋아서인지 아직까지 눈도 잘 보이고, 귀도 잘 들리니 다산선생님께 죄송스러운 마음뿐이다.

얼마 전 연세대의 김형석 교수 강연을 보면서 상당히 많은 것을 느꼈다. 그분의 여러 말씀 중에서 “친구들이 내가 철이 들지 않아서 늙지 않는다고 그래요.”, “인생에서 제일 좋고 행복한 나이는 60에서 75세까지예요”라는 말씀이었다. 그 분 말씀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면서 나의 옛날 얘기를 해보겠다.

어느 집안이나 형제들의 어렸을 때 얘기가 몇개는 전해 내려오기 마련이다. 부모님들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나에 대한 얘기는 어디하나 똑똑한 데라고는 없는 약간 맹한 얘기들밖에 없었다. 다만 한가지 좀 예외적인 것이 있다면, 끊임없이 “왜요?”라는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 봐도 나는 그리 똑똑하지 않았던 것 같다. 반장 한번 못했고, 전교생 앞에서 연설 한번 해본 일도 없다. 그저 ‘눈에 안띄는, 공부는 조금 잘하는 그저 그런 애’ 이것이 아마 나를 가르키는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다만 한가지 예외적인 것이 있다면 ‘미술특기상’과 ‘음악특기상’을 받았다는 것 정도이다.

초등, 증등, 고등학교 시절 뭐하나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없이 지나갔다. 중학교 때 기억이다. 같은 반에 매우 똑똑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내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른스런 얘기를 너무 잘하는 애였다. 몇 년 전 그 친구를 만나 “사실 나는 그때 너를 너무 존경했고, 나는 왜 이리 바보스러울까?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라고 말하면서 함께 웃은 적이 있었다. 대학 생활도 일반 대학생들과 별 차이 없는 평범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도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내 마음에 있었던 것은 ‘사물을 볼 때 또는 공부를 할 때’도 “왜 그럴까?”라는 질문이었다. 뉴톤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높은 상위차원의 질문은 아니고, ‘왜 비행기는 나를 수 있을까? 저 사람들이 열심히 싸우는데 왜 저렇게 심하게 싸울까? 왜 선생님은 시험에서 이런 질문을 했을까?“ 등등 정말로 아무도 관심이 없고, 또 얘기해 봐야 바보 같다는 소리 밖에 들을 수 없는 그런 생각들을 끊임없이 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문득 김형석 교수께서 “인생에서 제일 좋고 행복한 나이는 60에서 75세까지예요”라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사람들은 “다시 젊어 봤으면... 그럼 어떠어떠 하게 했을 텐데.”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나는 젊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힘들었던 질풍노도의 시절, 남에게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서 끙끙대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힘들게 살았던 이유(경제적인 어려움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힌다.)는 아마 나의 성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참 요령이 없는 사람이다. 무슨 일이든 포기하는 법 없이 정면돌파하는 성격이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피곤한 삶이다. 안해도 좋은 것을 꼭 해야만하고, 적당한 선에서 끝내도 좋은 것을 꼭 끝까지 가야 직성이 풀린다. 물론 이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가 얻은 많은 행운 중에는 나의 이런 성격 때문에 얻어진 행운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도중에는 정말 피곤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 유학시절 교수님이 경영관련 3,4개의 보험 케이스를 조사해 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운전도 시원치 않고, 영어는 더 말할 것도 없으며, 아는 사람도 없는 미국에서 자기가 가입한 보험을 이방인 학생에게 자세히 설명해 줄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았다. 어찌어찌해서 3개의 보험 케이스는 인터뷰를 했는데 수업시간에 배운 것과는 너무 딴판이었다. 그래서 전화번호부 옐로우페이지에서 광고 면적이 넓은 회사들을 찾아 26개의 케이스를 분석하여 제출하였다. 물론 교수님으로부터 많은 칭찬을 받았지만 그 26개의 케이스스터디를 하는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다행히 부모님께서 물려주신 건강한 신체가 있어서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쉽지는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귀국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어찌 보면 행운이었지만 여기저기 불려 다니게 되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가장 보람있는 일이다.”라는 공무원 출신 아버지의 말씀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나 한참 후에 생각해 보면, ‘그 사람은 쉽게 부탁한 것인데... 그 정도로 까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는데... 그 정도의 깊은 분석까지는 필요 없는 일이었었는데...’

어찌 보면 아둔할 정도로 열심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크게 후회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렇게 까지 열심일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이런 지금까지 행동에 대한 보상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데서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김형석 교수 말대로 60대가 되면서 ‘갑자기, 정말로 갑자기’ 세상이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게 되었다. 즉 무슨 생각이나 질문이 있을 때 큰 고민 없이 “그 문제의 본질은 이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는 뜻이다. 혼돈스러웠던 세상 일이 비교적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는 말이다. 김형석 교수께서 “나의 인생 중 가장 생산적인 시기가 60세 이후”라는 말이 아마 이런 말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철학자가 되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마음이 과거에 비해 훨씬 평화롭고, 잘 흥분되지 않으며, 무슨 새로운 사실이 있을지라도 그 문제의 해답이 비교적 명확하게 마음속에 떠오른다는 것이다. 물론 내가 큰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 아니고, 그저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런 평화로운 마음을 갖게 하는 몇몇 기분을 여기에 적어 보겠다. 아마 공감하시는 분들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 아무것도 하지 않고, 빈둥빈둥 놀아도 마음에 죄스러운 느낌이 들지 않아 좋다. 그래 그간에 열심히 일했으니까!

• 지금까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던 도덕, 규칙, 규범을 지금도 지키지만, 안 지켜도 과거처럼 부담스러울 것 같지 않다.

•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남이 나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 역사를 배우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알게 된 것 같다.

• 보시의 공덕(布施, 報施의 功德)이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알게 되고, 가능하면 아까워하는 마음 없이 남에게 작은 보시, 선행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남이 나에 대해 불편부당한 행동을 해도, 과거보다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 조금 틀린 말 또는 가치중립적이지 않은 말을 비교적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다.

• 성인(聖人)들의 말이라고 해서 꼭 그런 것은 아니고, 경우를 잘 생각해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 수많은 중국의 제자백가들 중에서 맹자도 아닌 유독 공자만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지를 알게 된 것 같다. 이것은 나에게 매우 오래된 질문이다.

• 도덕과 규범이 왜 탄생했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강조되는지를 알 것 같다.

• 요청이 있을 때만 얘기하고, 그저 듣기만 하고 와도 모임에 잘 참석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고, 설령 필요한 것이 없을지라도 과거처럼 크게 불편하게 느끼지 않아서 좋다.

• 피곤하여 지하철을 탓을 때 우대좌석에 앉을 수 있어서 좋다.

• 세계정세의 변화와 그 원인에 대해 비교적 용이하고 명확하게 이해되어서 좋고, 특히 중국과 일본의 속내를 쉽게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좋다.

• 정치도 중요하지만 현대와 미래에는 과학과 기술이 정치보다 훨씬 더 국가존망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좋다.

• 주위의 수없이 떠드는 의미 없는 목소리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서 좋다.

• 다산선생님을 조금 더 알게 되어서 좋고, 그분보다 더 오래 살 수 있을 것 같아(다산 졸년 76세) 좋다.

• 이렇게 좋은 의료시설과 의료보험제도가 정비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이 좋다. 해외에서 몇 달 이상 장기간 살아본 사람은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가 얼마나 좋은 지 알 것이다.

이밖에도 많지만 여기서 줄이겠다. 그러나 내가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내가 무소유를 찬양하고, 세상에서 물러나 뒷방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지금도 독서와 배우는 것은 나의 매일매일의 생활이고, 하루에도 최소 반 페이지 이상 메모를 하는 편이다. 일주일에 한편은 꼭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다만 김형석 교수의 말대로 철이 늦게 들어 아직도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하고, 미운 것을 밉다고 하며, 착함을 권장하고 악함을 징계하여야 한다는 다산 선생님의 말씀을 오래오래 따르고 싶은 것이 지금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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